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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칼럼

투자(investment)와 투기(speculation)

by The Deep Finance 2022.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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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투자(investment)라는 말도 쓰고 투기(speculation)라는 말도 쓴다. 이 두 단어를 가로지르는 분명한 경계는 없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분명히 다르기도 하다. 이 글을 통해 투자와 투기의 차이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실생활에 도움이 되어나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뉴스 등에서도 이 단어들을 섞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뉴스에서는 부동산 '투기'와 주식 '투자' 얘기가 나온다. 왜 부동산은 '투기'이고 주식은 '투자'일까? 실상은 둘 다 투기에 가깝다. 다만 대중들이 부동산에 대한 투기 행위를 더 부정적으로 보기에 뉴스에서도 부동산은 '투기'라고 하고 주식은 '투자'라고 표현할 뿐이다. 출근 시간 지하철만 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주식 시세를 확인하는 요즘 세상에 뉴스에서 주식 '투기'라고 하면 그 수많은 사람들이 기분이 별로 안 좋을 것이기에 뉴스는 보통 '투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투자(investment)란?

주식을 사는 행위가 '투자'가 될 수도 있다. 여기와 관련해서 살펴 볼 표현이 하나 더 있다. '주식은 자본주의의 꽃' 이라는 표현이다. 틀렸다. 자본주의의 꽃은 주식이 아니라 '주식회다'다. 주식회사란 여러 사람이 회사에 공동으로 투자하고 위험 역시도 나눠 갖는 회사이다.

 

초기 주식회사는 배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야 배가 침몰하는 사고는 극히 드물게 일어나지만 옛날에는 아니었다. 험한 바다를 항해하다보면 자연에 의해서 혹은 사고에 의해서 배가 난파되기도 하고 돌아오지 못하게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배를 띄울 때에는 여러 투자자들이 참가했다. 그리고 그 배가 목표한 바를 이루어서 수익을 냈을 때에는 지분에 따라 그 수익을 나누었다. 어선도 마찬가지였다. 소설 모비 딕(Moby Dick)에도 이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소설 초반부에 이스마엘과 퀴케크가 선원과 작살잡이로 일을 하고자 할 때 선장들과 월급이 아닌 지분에 대한 협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스마엘가 퀴케크는 노동으로 지분을 산 셈이었다. 이 경우는 주식 '투자'이다.

 

투자는 어떤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이 경우 자신이 투자한 액수 만큼만 위험부담을 지게 된다. 그래서 주식회사는 유한책임(limited)회사이다. 외국 회사 이름을 보면 뒤에 'ltd.'라는 글자가 붙은 경우가 많다. 이는 limited, 즉 '유한책임'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여담이지만 중국 회사들은 '유한공사'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이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중국은 공산당 1당 국가라 공사라는 말을 쓰나?'라고 말하지만 중국에서 '공사'는 '회사'를 뜻한다. 그리고 '유한공사'는 '유한책임주식회사'라는 뜻이다. 즉, 주식회사라는 말이다). 즉 1차시장에 참여한 사람들, 그 주식회사에 직접 돈을 댄 사람들은 주식 형태로 회사에 '투자'를 한 사람들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투자'도 물론 이루어진다. 아파트 단지를 짓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아파트 단지를 짓는 일은 사업이다. 그것도 매우 큰 돈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보통 아파트 단지나 스키장이나 리조트 등을 짓는 사업을 한국에서는 '프로젝트(project)'라고 많이 부른다. 그래서 그 프로젝트에 돈을 공급하는 일을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이라고 부른다. 이런 프로젝트에는 보통 수천억이 들어간다. 프로젝트에는 위험이 따르기에 개인이나 단일 회사가 혼자서 그 사업을 하기는 상당히 위험하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즉 PF란 프로젝트에 투자할 투자자들을 모으고 그 투자자들이 투자한 자금을 모으는 체계를 마련하고 사업이 진행되면서 발생하는 이익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는 과정이다.

투기(speculation)란?

투기는 어떤 일을 진행시킴은 없이 추측만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행위이다. 투기에도 위험이 따른다. 이 경우 위험액은 본인이 투기에 쓴 금액이다. 김씨가 A사 주식이 오를거라 생각하고 은행에서 1천만원을 빌려서 A사 주식을 샀다고 치자. 그런데 A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면서 A사 주식이 폭락하여 주식 값이 반토막이 났다. 김씨는 은행에서 빌린 1천만원을 갚아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다. 주식을 다 되팔아도 5백만 원이 부족하다. 어떻게든 5백만원을 구해서 은행 빚을 갚지 않으면 김씨는 채무불이행자가 된다. 하지만 이 모든 현상은 A사와는 상관이 없다. 김씨가 은행에서 빚을 내서 A사 주식을 구매하는 행위도 A사가 하는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김씨가 주식 투기에 실패했다 한들 A사가 하는 사업이 피해를 입지도 않는다. 일반 사람들이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주식을 사고 파는 행위는 전적으로 2차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 어떤 돈도 그 사람들이 주식을 산 그 회사로 들어가지 않는다. 사실상 뉴스나 주변 사람들이 '주식 투자'라고 말하는 모든 행위는 '주식 투기'이다.

 

부동산 투기도 마찬가지다. 땅을 매입해서, 혹은 건물을 매입해서 무슨 사업을 하려는 목적이 아닌 단지 그 땅이, 그 건물 값이 오르면 되팔려는 목적으로 하는 부동산 매수는 부동산 투기이다. 부동산 투기에도 위험이 따른다. 성공하면 차액을 벌지만 실패하면 손해를 본다. 그리고 그뿐이다. 개인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든 잃든 개인의 사정일 뿐이다.

 

투기를 뜻하는 단어인 speculation은 '추측하다', '짐작하다'는 뜻이다. 자금을 써서 무슨 일을 일으키고 진행시키는 것이 아닌 추측이나 짐작에 돈을 거는(betting) 행위는 투기행위이다. 합법적인 도박과도 같다. 합법적인 도박장에서 사람들이 하는 행위들도 모두 투기이다. 확률적으로 어떤 결과가 일어나리라고 추측하거나 짐작하고 돈을, 그리고 돈만을 거는 행위는 투기이다.

투기가 만들어내는 부작용

투기라는 말은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위에서 설명했든 투기는 어떠한 생산적인 활동도 불러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 자본주의 정신은 위험에 대한 유한책임을 지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여 그 일이 잘 돌아가면 자본소득을 얻고자 함이 목표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현대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주식 투기나 부동산 투기는 초기 자본주의 정신에 맞지는 않다.

 

하지만 투기의 역사는 자본주의적 투자의 역사보다 훨씬 길다. 그러니 사실 투기가 좋은가 나쁜가라는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인류는 돈을 걸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투기를 해 왔다. 주식회사의 탄생과 동시에 그 주식에 대한 투기도 탄생한 셈이다. 주식은 증권이고 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 중 증권거래를 불법이라 정의한 나라는 없다. 그러니 증권에 대한 기대시장, 즉 투기시장은 불법이 될 수가 없다.

 

다만 투기활동이 발생시키는 부작용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기는 한다. 주식 투기의 경우 그 부작용은 제한적이다. 즉, 주식 투기에 실패한 사람들이 투기액을 잃는 선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는 문제가 다르다. 주식과는 달리 부동산에서는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 중 부동산 투기로 인해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겪은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흔히 '서브프라임 사태'라 불리는 그 사태가 발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모든 거래가 다 투기였다. 그리고 그 부동산 투기의 결과물들이 증권화 시장과 연결되었다. 부동산 투기와  n차 증권화 시장이 계속 맞물려 돌아가면서 위험 규모는 엄청나에 불어났고 그 위험은 결국 2008년에 터졌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나 길바닥에 나앉았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금융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합병되었다. 또한 시장원리를 강조하는 미국의 연방은행이 사상 초유의 유동성(돈)을 인위적으로 시장에 푸는 등 당시로서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한편 그런 와중에도 그러한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그 예측에 베팅하여 투기에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마이클 루이스가 책으로 써서 영화화까지 된 빅 숏(big short)의 주인공이다(그렇다. 투기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남들보다 잘 할 수밖에 없다).

투자와 투기

정리하자면 투자는 생산과 관련된 활동이고 투기는 생산과는 관련 없는 순수히 순자본을 증식하려는 목적만으로 하는 활동이다. 그러니 투기보다는 투자가 일어나는 나라가 더 생산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투자가 잘 일어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할 몫이다.

 

기초적인 형태의 투기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를 따질 필요가 없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주식회사의 역사보다도 투기의 역사가 훨씬 더 오래되었다. 투기는 확률적인 도박이다. 그래서 투기도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한 사람들이 대개는 더 잘 한다. 또한 공부도 연구도 안 해도 운이 좋아서 투기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투기 시장은 그러한 시장이다. 투기를 하고 벌든 잃든 투기자가 책임을 지면 된다. 

 

다만 부동산 투기의 경우에는 투기에 실패한 사람 때문에 그 부동산에서 생활하거나 활동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주식과는 달리 부동산은 따지고 들어가면 소유권 문제가 복잡하고 개념상으로도 생각보다 따져 볼 부분이 많다. 부동산을 무분별한 투기 대상으로 허용을 해야 하는지 짚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는 거의 무분별한 투기가 허용이 된 수준이다. 허용이 된 이상은 부동산 투기는 널리 행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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